‘꼬마신랑과 각시’ 한지등 제작

옛날에는 신랑 신부의 얼굴을 모른채 혼례를 치뤘다고 합니다. 동옥저 지방에서 유행하던 혼인풍속으로 일종의 매매혼이었습니다. 생활이 빈곤해 딸을 양육할 수 없을 때 장차 아내가 될 것을 전제로 남자의 집에가서 자라 성인이 되면 친가에 돌아와 있다가 남자측에서 대가를 지불한 시집을 가는 것으로 여자를 재산으로 치고 딸을 줄 때에는 양육비를 지급하는 것으로 고려, 조선시대에도 일부 계승되었습니다.   재미있는…